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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한 여인이 채용된지 일주일만에 해고당하는 장면을 글로 써보라

참고로 지금 이 여자를 해고하려는 사람은 일주일 전만 해도 그녀의 채용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을 일주일간 지켜봤는데 우리 회사랑 많이 안 맞는거 같아요 -어떤 점이요? 그 때 사장님 오셨을 때 90도로 인사 안하고 그냥 고개만 숙였지요. 사장님이 많이 언짢아하셨어요. 제가 데려온 사람인데 제 체면이 말이 아니에요. 그거 인사하는게 뭐가 어렵다고 허리를 굽히지도 못하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무래도 여기 더 계셔봤자 서로 좋을게 없을 거 같아요. -아 네.. 고작 인사를 90도로 안 했다고 지금 제가 잘리는 건가요? 고작이라뇨. 90도 인사는 저히 회사의 전통이에요. 이렇게까지 크게 회사를 일구신 사장님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우리 회사의 자랑스런 문화라고요. 역시 회사 문화를 이렇게..

010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룸메이트

나의 예전 룸메이트는 내가 논문 불합격에 이혼, 친구의 죽음, 엄마의 사고 등 겹겹으로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가장 가까이 있었던 친구이다. 이혼하고 나서 갈 곳이 없었을 때도 자기 집에 짐을 놓게 해 주었고 논문을 다 쓸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아도 된다고 해주었다. 고마웠다. 그 친구는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먹어도 안 먹어도 상관없다. 문제는 얘가 먹을 때마다 자기 친구 흉을 그렇게 많이 보는거다. 그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게 짜증이 났다. 이걸 계기로 나는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는 내 문제만으로도 버거웠고 그걸 보이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썼는데, 걔는 그런 나를 보는 것도 짜증이 났던거 같다. 내가 자기 집에 사는 이상, 자기 생활에 다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한거 같았다. 나는..

009 내가 도둑맞은 물건

생일 선물로 받은 만년필과 가방을 집에서 도둑 맞았다. 누가 도둑질 했는지 짐작은 간다. 그 집에 살던 16살 먹은 집주인 딸이다. 그 애가 혼자 있을 때 내 방에 들어가서 슬쩍 한게 틀림없다.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나를 보더니 흠칫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 날이었을텐데... 하지만 표정만 가지고 내 방에서 뭘 어떻게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싹수가 노란년.. 나는 그 여자애에게 온갖 저주를 다 퍼부었다.

008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의 전통에 대해서 말해보라

제 가족은 전통이란 것이 없습니다. 근데 전통이란 뭡니까?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 나보다 10살 더 많은 사촌 언니들은 가족들 생일을 끔찍히 챙깁니다. 그걸 보면 생일 축하를 다같이 모여서 하거나 생일에 밥 한끼는 같이 먹는게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만나서 밥 먹는 정도까지는 괜찮은, 그렇게까지 껄끄러운 사이가 아니란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가족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006 인질의 몸값을 요구하는 편지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라

이 편지를 받게 될 때쯤에는 안녕하지 못하시겠지. 너가 사랑하고 아끼는 아들은 내 인질이 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걸, 가까스로 살려두어 생명에는 지장없도록 잘 돌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제시하는 몸값만 제대로 지불하면 얌전히 돌려보내줄 생각이다. 9천억을 현금으로 준비해라. 삼일 후에 이 돈을 받지 못하면 너의 아들의 신체 일부를 하나씩 잘라 공개할 예정이니 서두르시길

005 당신은 우주 비행사다. 당신의 완벽한 하루를 설명하라

우주 비행사... 영어 단어 외울 때 처음 나오는 어려운 단어, astronaut가 생각난다. 우주를 비행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스케일이 다르려나? 지구 뿐 아니라 대기 밖에 있는 행성에도 관심을 갖고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자잘하고 소소하게 귀찮은 일은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우주 비행사를 처음 본 것은 비행기에서 본 "그래비티"라는 영화에서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우주에서 어떻게 살아서 지구로 돌아갈 것인가. 깜깜하고 조용한 배경은 사람을 경건하게 만든다. 게다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고 의지할 사람도 없다면 미쳐버리기 딱 좋지 않은가. 나는 우주 비행사라는 직업을 잘 모르고 그러므로 그 하루를 설명할 수 없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다. 우주 비행사..

004 2021년 당신의 페이스북에 상태를 업데이트 해보라

왜 그래야 하죠? 페이스북은 참 쓸모없어요. 예전의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거기에 사진을 올렸는지 지금 돌아보면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여겨질 때가 많답니다.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있은 후, 페이스북을 아예 지워버렸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왜냐면 나는 페이스북에서 탈퇴할 용기까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에서 소위 사회 명사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시끄러운 소란을 진단하고 글을 쓰는데, 그걸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글도 다 자기 위안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부질없기도 합니다. 그럼 내가 이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배설물이 좋은 비료가 될 것이라는 확신도 없는데

003 화초가 죽어가고 있다. 화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화초야. 사실은 나도 죽어가고 있거든.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그래도 나에게 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너를 잘 돌볼게. 물도 잘 주고 햇빛도 잘 받게 해주고 너무 뜨거우면 그늘에도 잠시 옮겨줄게. 영양제도 가끔 맞으면 좋겠지? 그렇게 너가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내가 노력할게. 너가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은 나에게 큰 영향을 줄거야. 식물도 따스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받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보고 싶어. 그게 바로 화초 너가 살아야 할 이유야. 노력과 돌봄의 결실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